스티브 잡스 요약, 분석 및 비평 | 월터 아이작슨
자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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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책 조항: 이것은 비공식적인 요약 및 분석입니다.
월터 아이작슨 소개
월터 아이작슨 툴레인 대학교 역사학과 교수입니다. 또한 뉴욕에 본사를 둔 금융 서비스 회사인 페렐라 와인버그의 자문 파트너이기도 합니다. 월터는 현재 석좌 연구원으로 재직 중인 아스펜 연구소의 전 CEO입니다. 마지막으로 그는 CNN의 회장과 TIME 매거진의 편집장을 역임했습니다.
아이작슨은 영향력 있는 인물들의 삶에 대한 전기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예를 들어 아인슈타인, 벤자민 프랭클린, 키신저, 다빈치 등의 전기를 성공적으로 집필한 바 있습니다.
소개
스티브 잡스: 전기 는 전 애플 CEO 스티브 잡스의 삶에 대한 여과 없는 기록입니다. 아이작슨은 2년에 걸쳐 스티브 잡스와 40회 이상의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또한 잡스를 잘 아는 100명 이상의 사람들과도 인터뷰했습니다. 예를 들어 가족, 친구, 동료, 경쟁자 등이었습니다. 이 전기는 독자들을 스티브 잡스의 삶과 성격 속으로 초대합니다. 스티브는 롤러코스터 같은 삶을 살았던 강렬한 사람이었지만, 이 전기에서 어떤 통제도 원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전기가 출판되기 전에는 어떤 내용도 공개하지 않았고, 전기가 출판되기 전에는 읽지 않기로 했습니다. 따라서 이 전기는 스티브 잡스가 누구였으며 그가 무엇을 성취했는지에 대해 독특하고 진실된 묘사를 제공합니다.
스토리샷 #1: 어린 시절, 버려지고 선택받다
스티브 잡스는 존 잔달리와 조앤 쉬블의 친아들이었습니다. 쉬블의 가족은 무슬림인 잔달리와의 관계를 반대했습니다. 그래서 두 사람은 어쩔 수 없이 스티브 잡스를 입양 보내야 했습니다. 그 후 스티브는 폴과 클라라 잡스에게 입양되었습니다.
폴은 엔진 기술자였지만 자동차 정비사로 전향했습니다. 그는 스티브에게 엔지니어링과 디자인을 처음 소개한 사람이기도 합니다. 스티브는 처음에 부모님이 두 분이라는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잘 몰랐습니다.
스티브가 어렸을 때 그의 가족은 캘리포니아주 팔로알토로 이사했습니다. 이 지역에는 유명한 "실리콘 밸리"가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그는 기술의 진원지에서 기술 붐이 일던 시절에 자랐습니다.
스티브는 학교에서 자주 지루해했고 장난을 치다가 곤경에 처하기도 했습니다. 그의 부모님은 그가 심심해서 장난을 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는 주어진 일에 비해 너무 똑똑했습니다. 폴이 스티브에게 화를 낸 유일한 순간은 그가 LSD와 마리화나를 실험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였습니다.
고등학교 시절 스티브는 음악과 예술 등 전자 제품 이외의 분야에 대한 재능을 발견하기도 했습니다.
스토리샷 #2: 이상한 커플: 두 스티브
스티브 워즈니악은 스티브 잡스보다 다섯 살 더 많았습니다. 하지만 두 사람의 사고방식은 매우 비슷했습니다. 두 사람은 친구의 차고에서 처음 만나 기술 프로젝트를 함께 진행했습니다. 예를 들어, 두 사람이 함께한 첫 번째 프로젝트는 "블루 박스"였습니다. 이 프로젝트는 주파수를 이용해 사람들이 무료로 장거리 통화를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었습니다. 블루박스를 판매하기 시작했을 때 누군가 총을 겨누고 블루박스를 훔쳐갔습니다.
스토리샷 #3: 드롭아웃
잡스의 '다른' 성격은 고등학교 후반에 크게 발달한 것 같습니다. 잡스는 이상한 식단부터 다양한 약물까지 모든 것을 시도했습니다.
잡스는 리드 대학에 입학했습니다. '히피'라는 명성에도 불구하고 그는 대학 생활을 즐기지 않았습니다. 잡스는 대학에서 로버트 프리드랜드를 만났습니다. 잡스는 처음에는 프리드랜드의 특이한 점을 받아들였지만 결국 그를 금광을 캐는 사람으로 치부했습니다. 잡스는 1년 만에 리드를 중퇴했지만 원하는 과목을 마음대로 수강할 수 있었습니다.
스토리샷 #4: 아타리와 인도: 선과 게임 디자인의 예술
리드를 그만둔 지 1년 반 만에 잡스는 실리콘 밸리로 돌아왔습니다. 그는 곧바로 아타리 본사에 들어가 일자리가 생길 때까지 떠나지 않겠다고 말했습니다. 스티브는 일자리를 제안받았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동료들은 그의 성격 때문에 금세 그를 외면했습니다.
잡스는 잠시 아타리를 떠나 인도로 떠났습니다. 인도에서 그는 동양 문화에 대한 관심을 추구했습니다. 아타리의 수장은 잡스가 돌아왔을 때 1인용 버전의 퐁을 만들자고 제안했고, 작은 컴퓨터 칩을 사용하면 보너스를 주겠다고 했습니다. 잡스는 워즈니악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둘은 나흘 만에 게임을 완성했습니다.
스토리샷 #5: 애플 I
실리콘 밸리에서 컴퓨터 혁명이 일어나고 있을 때 워즈니악은 마이크로프로세서를 처음 보았습니다. 이를 통해 그는 현대 컴퓨터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었습니다: 키보드, 화면, 컴퓨터가 하나로 합쳐진 컴퓨터. 워즈니악은 이 디자인을 무료로 제공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잡스는 이를 통해 돈을 벌 방법을 찾았습니다. 잡스는 그날 사과 과수원에서 돌아오던 길에 '애플'이라는 이름이 마음에 쏙 들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애플 컴퓨터가 설립되었습니다.
잡스와 워즈니악은 한 달 동안 100대가 넘는 컴퓨터를 열심히 생산하여 지인들과 지역 컴퓨터 딜러에게 판매했습니다. 애플은 불과 30일 만에 수익을 올렸습니다.
스토리샷 #6: 애플 II: 새로운 시대의 여명
잡스는 애플 컴퓨터에는 다른 대기업이 가진 프레젠테이션과 자금이 부족하다는 것을 금방 깨달았습니다. 그는 아타리에서 쌓은 인맥을 활용해 은퇴한 33세의 백만장자 마이크 마크쿨라를 찾았습니다. Mike는 Apple을 운영할 수 있는 인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마크쿨라는 애플의 홍보 담당자를 고용하기도 했습니다. Apple II가 출시되자 그 성공은 놀라웠습니다.
결국 마크쿨라는 잡스를 관리하기 위해 마이크 스콧을 회사 사장으로 고용했습니다. 두 사람은 많은 부분에서 충돌했지만 Apple II는 600만 대 이상 판매되었습니다.
스토리샷 #7: 크리산과 리사
잡스는 크리산 브레넌과 5년 동안 교제했고, 1978년 첫 아이를 낳았습니다. 아이는 여자아이였고 이름은 리사였습니다. 잡스는 임신 기간 내내 아이가 자신의 아이라고 일축했습니다. 그는 나중에 당시 상황을 처리하는 방식에 대해 후회를 표했습니다.
스토리샷 #8: 제록스와 리사: 그래픽 사용자 인터페이스
잡스는 Apple II 이후 다른 프로젝트로 넘어갔지만 Apple III와 Lisa 컴퓨터에는 만족하지 못했습니다.
당시 제록스는 주요 기술 혁신 기업으로 알려져 있었습니다. 잡스는 애플이 그래픽 사용자 인터페이스(GUI)와 같은 제록스의 일부 기술에 액세스할 수 있도록 하는 계약을 체결했습니다. GUI를 통해 사용자는 텍스트와 그래픽을 동시에 볼 수 있었습니다.
잡스는 이 새로운 기술을 최신 컴퓨터 마우스뿐만 아니라 Lisa에도 적용했습니다.
이러한 혁신에도 불구하고 애플의 경영진은 1980년 여름에 잡스를 강등시켰습니다. 잡스의 기이한 행동으로 인해 더 이상 대형 프로젝트를 관리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스토리샷 #9: 상장: 부와 명성을 얻은 한 남자
애플의 가치는 1977년 1조 4,309억 원에서 1980년 말에는 1조 4,790억 원으로 상승했습니다. 애플이 주식 시장에 상장한 후 잡스는 스물다섯 살의 나이에 10억 4천 5백만 달러의 가치를 가졌습니다. 이러한 부에도 불구하고 잡스는 고급 스포츠카와 독일제 칼 외에는 물질적인 것에는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잡스는 자신의 주식을 지키기 위해 주식시장 개장 초기에 입사한 직원들 중 일부도 제외했습니다. 결국 워즈니악은 자신의 주식 대부분을 이들에게 증여했습니다.
스토리샷 #10: 맥의 탄생
원래 매킨토시 프로젝트의 책임자는 제프 래스킨이었습니다. 그러나 잡스는 결국 프로젝트에 대한 모든 권한을 장악함으로써 권력 투쟁에서 승리했습니다. 잡스는 마이크 스콧이 정리해고로 사장직에서 해임된 후 애플 본사에서 자신의 권력을 강화했습니다.
스토리샷 #11: 현실 왜곡 필드
잡스는 직원들이 "현실 왜곡 필드"라고 부르는 특별한 일을 하도록 동기를 부여하는 방법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잡스는 고의적으로 현실을 왜곡함으로써 사람들에게 무엇이든 가능하다고 확신시킬 수 있었습니다.
잡스는 또한 세상을 흑백으로만 보았습니다. 사람들은 잡스를 "깨달은 사람"이거나 "개자식"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또한 많은 직원들이 잡스가 자신의 아이디어를 훔친다고 불평했습니다. 이후 애플은 매년 잡스에게 가장 용감하게 맞선 직원에게 상을 수여하기 시작했습니다. 잡스의 동료들은 잡스의 기발함의 핵심에는 완벽을 향한 절대적인 헌신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스토리샷 #12: 디자인: 실제 아티스트의 간소화
잡스의 완벽주의는 매킨토시 프로젝트에서 잘 드러났습니다. 그는 포장, 인터페이스, 화면, 심지어 컴퓨터 내부까지 모든 것이 아름답기를 원했습니다. 이는 엔지니어들을 미치게 만들었습니다.
잡스는 아티스트와 엔지니어가 같은 느낌을 받기를 원했습니다. 그는 매킨토시에서 작업한 모든 엔지니어와 아티스트의 이름을 컴퓨터 내부에 새겨 넣었습니다.
스토리샷 #13: Mac 구축하기
잡스는 자신의 회사를 포함해 모든 곳에서 경쟁했습니다. 그는 Mac을 먼저 출시하기 위해 Lisa 제품과 경쟁했습니다. 결국 Lisa는 실패하고 매킨토시만 회사의 중추로 남게 되었습니다.
그해 말, 잡스는 타임지가 선정한 올해의 인물로 선정되었다고 믿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타임지는 대신 그의 매킨토시를 "올해의 기계"로 선정했습니다.
스토리샷 #14: 스컬리 입력
잡스는 자신이 직접 Apple을 운영하기에는 아직 너무 미숙하다고 판단하여 존 스컬리를 영입했습니다. 스컬리는 펩시 챌린지 캠페인을 담당했던 전직 펩시 마케팅 디렉터였습니다. 스컬리는 처음에는 꺼려했지만 잡스가 그를 설득했습니다.
매킨토시는 $1,995달러로 설계되었습니다. 하지만 스컬리는 대규모 출시를 위해 마케팅 비용을 포함해야 한다고 고집했습니다. 이로 인해 가격은 $2,495달러로 상승했습니다. 잡스는 훗날 이 결정이 Microsoft가 개인용 컴퓨터 시장을 장악하게 된 주된 이유라고 말했습니다.
스토리샷 #15: 출시
Apple이 성장하는 와중에도 IBM은 서서히 PC 시장에서 가장 큰 점유율을 차지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에 애플은 1984년 매킨토시를 출시하며 대응에 나섰습니다. 매킨토시 출시는 잡스가 향후 출시할 제품의 청사진을 제시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먼저 잡스는 리들리 스콧을 고용하고 유명한 "1984" 텔레비전 광고에 $75,000을 지출했습니다. 이 광고는 그해 슈퍼볼에서 처음으로 방송되었습니다. 그런 다음 잡지와 인터뷰를 시작했습니다. 이러한 홍보는 매킨토시의 성공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스토리샷 #16: 게이트와 직업
빌 게이츠와 스티브 잡스는 모두 1955년에 태어났습니다. 잡스가 캘리포니아에서 히피처럼 자란 반면, 게이츠는 시애틀의 저명한 변호사의 아들로 사립학교를 다녔습니다.
게이츠는 말수가 적고 수줍음이 많았습니다. 그는 예술가적인 잡스와는 달리 비즈니스와 전략에 대한 감각이 뛰어났습니다. 두 사람은 마이크로소프트가 매킨토시용 소프트웨어를 개발할 때 처음 함께 일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Microsoft가 Mac 운영 체제를 모방한 Windows를 만들면서 둘의 관계는 곧 악화되었습니다.
게이츠는 매킨토시와 윈도우 시스템 모두 제록스의 기술을 모방한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잡스는 게이츠의 이러한 배신감을 결코 용서하지 않았습니다.
스토리샷 #17: 이카루스
매킨토시는 초기에 많은 화제를 불러일으켰지만, 사람들이 기계의 한계를 깨닫게 되면서 결국 판매량이 둔화되었습니다. 또한 잡스의 성격은 회사 내에서 더욱더 충돌하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잡스는 애플랩스를 운영할 생각을 하다가 애플을 떠나기로 결심합니다.
스토리샷 #18: NeXT
잡스는 자신의 돈으로 'NeXT'를 설립하고 Apple에서 가장 좋아하는 엔지니어들을 고용했습니다. 이로 인해 첫 회사와의 관계가 냉각되었습니다.
NeXT는 컴퓨팅 성능에 대한 교육 기관의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설계되었습니다. 잡스는 NeXT에서 근무하는 동안 자신의 커리어에서 가장 큰 실수를 저질렀습니다. 그는 이러한 실수로부터 교훈을 얻었습니다.
스토리샷 #19: 픽사
잡스는 루카스필름의 애니메이션 사업부 지분 701만 3,000주를 1억 4,000만 달러에 인수하고 사업부 명칭을 Pixar로 변경했습니다. 이 이름은 사업부의 가장 중요한 하드웨어를 기반으로 한 것이었습니다. 결국 잡스는 픽사의 애니메이션에 집중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렇게 초점을 바꾼 이유는 그들이 제작한 단편 중 하나가 올해 최고의 작품으로 선정되었기 때문입니다.
스토리샷 #20: 평범한 남자
잡스는 1986년 양어머니가 돌아가신 후에도 친어머니를 찾기 위해 기다렸습니다. 결국 그는 조앤 심슨과 누나 모나를 다시 만났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잡스는 자신도 모르게 산호세에 있는 아버지의 지중해식 레스토랑에서 자주 식사를 했습니다.
그의 딸은 변덕이 심하다는 점에서 그와 매우 흡사했습니다. 그 후 그들은 때때로 몇 달 동안 말을하지 않았습니다.
스토리샷 #21: 패밀리 맨
잡스는 스탠퍼드 경영대학원에서 강연을 하던 중 미래의 아내인 로렌 파월을 만났습니다. 이곳은 로렌이 재학 중이던 곳입니다.
로렌은 하와이에서 함께 보낸 첫 휴가 중에 임신을 했습니다. 두 사람은 1991년 조촐한 결혼식을 올리고 팔로알토의 소박한 집으로 이사했습니다.
잡스의 딸 리사는 8학년 때 이들과 함께 살기 시작했고, 하버드 대학에 진학할 때까지 그곳에서 살았습니다. 잡스는 로렌과의 사이에 세 명의 자녀를 더 두었습니다.
스토리샷 #22: 토이 스토리
처음에 픽사는 애니메이터들을 디즈니로부터 유인했습니다. 디즈니가 그들을 다시 끌어들이지 못하자 픽사와 제휴하여 토이 스토리를 제작했습니다.
물론 잡스는 픽사를 통해 더 많은 돈을 벌 방법을 찾았습니다. 잡스는 디즈니의 마이클 아이즈너와 향후 프로젝트에서 발생하는 모든 수익을 동등하게 나누기로 합의하기도 했습니다.
스토리샷 #23: 재림
NeXT는 높은 비용과 작은 소프트웨어 라이브러리로 인해 컴퓨팅 업계에서 큰 성과를 거두지 못했습니다. 한편, 스컬리는 수익과 시장 점유율이 감소하는 상황에서 애플을 파국으로 몰아넣고 있었습니다.
1996년 애플의 주가는 약 $14까지 떨어졌습니다. 또한 길 아멜리오를 선임하기 전까지 몇 명의 CEO를 거쳤습니다.
아멜리오는 애플을 위한 참신한 아이디어가 필요했고 결국 NeXT를 인수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처음에는 잡스가 Apple에서 어떤 역할을 맡게 될지 불분명했습니다. 결국 아멜리오와 잡스는 그를 단순히 "고문"이라고 부르기로 결정했습니다.
스토리샷 #24: 복원
애플로 돌아온 잡스는 NeXT에서 자신이 가장 아끼는 사람들을 애플의 고위직에 임명함으로써 조용히 자신의 권력 기반을 공고히 하기 시작했습니다.
오라클의 래리 엘리슨(JAVA의 창시자)은 애플을 적대적으로 인수할 자금이 준비되어 있다고 주장하며 언론에 끊임없이 등장했습니다. 게다가 그는 언제든 잡스를 CEO로 임명할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아멜리오가 잘 풀리지 않는 것이 분명해지자 애플은 잡스에게 CEO 자리를 제안했습니다. 하지만 잡스는 거절했습니다. 그는 고문으로 남겠다고 고집했습니다. 잡스는 고위 직원들의 스톡옵션 가격 재조정을 요구하기 시작했습니다. 또한 이사회 전체가 사임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마침내 잡스는 마이크로소프트와 파트너십을 체결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이 파트너십은 10년간의 소송을 끝내고 애플의 주가를 급등시켰습니다.
스토리샷 #25: 다르게 생각하기
잡스도 회사의 경영권을 넘겨받았지만 '임시' CEO로 남았습니다. 그는 모든 라이선스 계약을 취소하고 더 적은 수의 더 큰 프로젝트를 만드는 데 집중하기로 결정했습니다. 하지만 너무 열심히 일하다 보니 가족을 위한 시간이 줄어들었습니다. 게다가 시간이 생기면 너무 지쳐버렸습니다.
스토리샷 #26: 디자인 원칙
스티브 잡스는 인재를 알아보는 안목이 있었습니다. 그는 디자이너 조니 아이브의 재능을 알아본 후 그를 애플에서 두 번째로 강력한 인물로 만들었습니다. 두 사람 모두 패키징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 후 두 사람의 이름은 애플 제품의 다양한 혁신적 패키지에 대한 특허에 등재되었습니다.
스토리샷 #27: iMac
잡스와 아이브가 함께 디자인한 첫 번째 제품은 iMac이었습니다. iMac은 일반 사용자를 위해 설계된 $1,200달러 정도의 데스크톱 컴퓨터였습니다. 잡스와 아이브는 컴퓨터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에 대한 생각을 과감하게 바꾸었습니다. 그들은 파란색의 반투명 케이스를 선택해 컴퓨터의 시그니처 외관을 완성했습니다. 잡스는 1998년 5월에 iMac을 출시했고, 비평가들은 컴퓨터의 새로운 외관에 대해 극찬했습니다. 아이맥은 출시 첫 6주 동안 27만 8천 대, 연말까지 80만 대가 판매되었습니다.
스토리샷 #28: CEO
결국 잡스는 자신의 직함에서 '임시'라는 수식어를 빼고 정식 CEO라는 직함을 받아들였습니다. 잡스는 즉시 재고를 줄이고 공급업체와 유리한 거래를 체결하기 시작했습니다. 또한 팀 쿡을 운영 책임자로 영입했습니다.
이 무렵 잡스는 1년에 단 1달러의 보수만 받으면서 2년 동안 애플을 경영하고 있었습니다. 이는 이사회를 불안하게 만들었습니다.
이사회는 또한 그에게 1,400만 개의 스톡옵션을 제안했습니다. 잡스는 이를 수락하는 대신 2천만 개의 옵션을 요구했습니다. 이사회는 마지못해 이를 받아들였습니다.
스토리샷 #29: 애플 스토어
잡스는 자신의 제품을 믿었지만 다른 사람이 제품을 판매하는 것을 싫어했습니다. 그는 애플 제품을 특별하게 만드는 기능이 대형 박스 소매점에서 사라질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잡스는 애플 소매점에 대한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습니다. 이사회는 게이트웨이가 매장에 투자했다가 처참하게 실패한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소매점에 대한 아이디어를 싫어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잡스는 매장을 운영하기 위해 팀을 구성했습니다.
2004년까지 애플 매장에는 주당 평균 5,400명의 방문객이 방문했습니다. 잡스는 매장에 지니어스 바를 추가하고 마침내 뉴욕에 플래그십 애플 스토어를 오픈했습니다. 이 매장은 결국 뉴욕에 있는 모든 매장 중 가장 높은 매출을 올리는 매장이 되었습니다.
스토리샷 #30: 디지털 허브
잡스는 Adobe가 Mac용 동영상 편집 소프트웨어를 개발하기를 원했지만 Adobe는 이를 거절했습니다. 잡스는 이를 배신으로 여겼습니다. 이 경험을 통해 하드웨어부터 소프트웨어, 소매점에 이르기까지 전체 사용자 경험을 제어할 수 있어야 한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잡스는 휴대용 음악 플레이어가 차세대 애플 제품이 될 것이라고 판단하고 SoundJam을 인수하여 애플의 음악 플레이어를 설계하기 시작했습니다.
비평가들은 사람들이 $399 음악 플레이어를 구매할 것이라고 회의적이었습니다. 하지만 소비자들은 곧 아이팟을 성공시켜 전체 음악 산업을 바꿀 정도로 큰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StoryShot #31: iTunes 스토어
2002년 무렵, 음반 회사들은 불법 복제로 인해 큰 어려움을 겪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잡스를 찾아와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잡스는 음악 회사들에게 저렴하고 원활하게 통합된 음악 구매 방법을 제공함으로써 불법 복제와 직접 경쟁해야 한다고 설득했습니다. 이 과정은 음악을 훔치는 것보다 더 편리해야 했습니다. 이것이 iTunes의 시작이었습니다.
iTunes는 큰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결국 애플의 최고 경영진은 잡스를 설득하여 Windows 버전의 iTunes 스토어를 제공하도록 했습니다.
아이튠즈 스토어는 첫해에 7천만 곡을 판매했습니다. 2007년 1월에는 아이팟이 Apple 매출의 절반을 차지했습니다.
스토리샷 #32: 뮤직맨
잡스는 밥 딜런의 팬이었기 때문에 결국 딜런이 아이팟 광고에 출연하는 마케팅 계약을 체결했습니다. 이 광고 이후 딜런은 큰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이후 아이팟 광고에 출연하는 것은 대부분의 아티스트들이 무료로 하는 일이 되었습니다.
스토리샷 #33: 픽사의 친구들
픽사에서 잡스의 주요 역할은 회사의 거래를 구조화하는 것이었습니다. 픽사가 디즈니와 맺은 계약이 만료되고 있었습니다. 밥 아이거는 최근 마이클 아이즈너를 대신해 디즈니의 수장으로 취임했습니다. 밥과 잡스는 의견이 일치했습니다. 그래서 두 사람은 디즈니가 픽사를 인수하는 거래를 성사시킬 수 있었습니다. 상당수의 픽사 직원들이 디즈니 애니메이션 부서의 고위직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스토리샷 #34: 21세기형 Mac
진지한 전문가를 위해 설계된 Power Mac G4 Cube는 현대 미술관에 전시될 정도로 아름다운 디자인을 자랑했습니다. 하지만 잡스가 생각했던 것만큼 잘 팔리지는 않았습니다.
잡스는 여전히 실수로부터 배우고 있었고 더 나은 아이팟을 만드는 데 집중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는 모토로라 칩에서 인텔 칩으로 교체하여 아이팟의 속도를 훨씬 빠르게 만들었습니다. 빌 게이츠는 잡스의 이러한 움직임에 감명을 받았다고 언급하기도 했습니다.
스토리샷 #35: 1라운드
잡스는 2003년 10월 정기 비뇨기과 검진을 받던 중 암에 걸렸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그는 9개월 동안 수술을 거부했습니다. 대신 비건 채식과 침술로 스스로를 치료하려고 노력했습니다. 물론 그의 상태는 더욱 악화되었습니다. 결국 그는 종양을 제거하기 위해 대침습 수술을 받아야 했습니다.
이 종양을 제거하면서 잡스는 자신의 죽음을 떠올렸습니다. 그 후 그는 2005년 스탠퍼드 대학에서 졸업식 연설을 해달라는 초대를 기꺼이 수락했습니다. 이 연설은 역대 가장 위대한 졸업식 연설 중 하나로 꼽힙니다.
잡스와 게이츠는 결국 서로를 마지못해 존중하는 마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는 2007년 월스트리트 저널과의 공동 인터뷰에서 절정에 달했습니다.
스토리샷 #36: 아이폰
잡스는 카메라가 장착된 휴대폰이 디지털 카메라 시장을 어떻게 죽이고 있는지 깨달았습니다. 그는 휴대폰 회사들이 휴대폰에 음악 플레이어를 추가하기 시작하면 같은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예상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이 딜레마를 나중에 해결하기보다는 일찍 해결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잡스는 원래 모토로라와 파트너십을 맺었습니다. 그는 이 파트너십을 깨고 이 프로젝트만을 위한 팀을 만들었습니다.
아이폰은 멀티터치를 통해 가능해졌습니다. 멀티터치를 통해 기기는 두 개 이상의 손가락을 감지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고릴라 글래스는 긁힘과 손상으로부터 휴대폰을 보호하기 위해 도입된 매우 강한 유리입니다.
이번에도 비평가들은 가격대가 너무 높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잡스와 소비자들은 그들이 틀렸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증명했습니다.
스토리샷 #37: 2라운드: 암의 귀환
잡스의 암은 2008년 봄에 재발했습니다. 결국 그는 그해 멤피스에서 간 이식을 받았습니다.
그는 또한 자신이 더 이상 애플에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될지도 모른다는 사실에 힘들어했습니다. 그가 복귀를 발표할 당시 애플의 주가는 $80에서 $140까지 상승했습니다.
스토리샷 #38: iPad
잡스는 2000년대 초반부터 태블릿 컴퓨터를 만들고 싶어했습니다. 아이폰이 출시되자 잡스는 아이패드로 방향을 전환하여 2010년 1월에 출시했습니다. 애플은 첫 달에 100만 대, 첫 9개월 동안 1,500만 대 이상의 아이패드를 판매했습니다.
잡스는 아이패드용으로 개발된 대부분의 광고에 만족하지 못했습니다. 결국 그는 사람들이 iPad로 할 수 있는 모든 다양한 일을 강조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또한 잡스는 타사 개발자에게 앱 제작을 개방하여 하룻밤 사이에 독자적인 산업을 창출했습니다.
스토리샷 #39: 새로운 전투
아이패드를 성공적으로 출시한 잡스는 이제 구글과의 싸움으로 넘어갔습니다. 구글은 최근 안드로이드 모바일 운영체제를 출시했습니다.
잡스는 기뻐하지 않았고 다음과 같이 말한 것으로도 인용됩니다: "필요하다면 마지막 숨을 거둘 때까지라도 이 잘못된 것을 바로잡기 위해 은행에 있는 1조 4천억 달러의 돈을 모두 쓸 것입니다. 안드로이드는 훔친 제품이기 때문에 파괴할 것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잡스는 여전히 폐쇄적이고 긴밀하게 통합된 시스템이 최고의 소비자 경험을 제공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에 비해 Microsoft와 Google 같은 기업들은 개방형 시스템과 자연스러운 경쟁이 승자를 결정한다고 믿었습니다.
스토리샷 #40: 무한대로
많은 소비자는 iPad가 단순히 큰 음악 플레이어에 불과하다고 불평했습니다. 잡스는 GarageBand와 같은 주요 창작 도구를 추가하여 이에 대응했습니다. 또한 그는 Apple에서 두 가지 장기 프로젝트를 시작했습니다. 첫 번째는 컴퓨팅의 미래가 될 클라우드 스토리지 시스템인 iCloud였습니다. 두 번째는 Apple 사무실의 재설계였습니다. 잡스는 애플 사옥이 세계 최고의 오피스 빌딩이 되기를 바랐습니다.
스토리샷 #41: 3라운드
잡스의 가장 중요한 업적 중 하나는 아들 리드가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것을 볼 수 있을 만큼 오래 살았다는 것입니다. 잡스는 암과 섭식 장애로 계속해서 투병 생활을 이어갔고, 가족들은 안타깝게도 그를 잃었습니다. 그는 세계에서 처음으로 DNA 염기서열을 해독한 20명 중 한 명이 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생명을 구하기 위한 노력은 부족했습니다.
잡스는 2010년 버락 오바마와 만나 미국의 학교 교육에 대해 논의했습니다. 특히 공과대학이 충분하지 않다는 점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이후 잡스는 대형 기술 기업 CEO들을 위한 특별 만찬을 마련하여 오바마와 만나 통찰력을 제공했습니다.
잡스의 생애 마지막 해에 그는 신세대 CEO들을 멘토링하는 데 관심을 표명했습니다. 여기에는 페이스북의 마크 주커버그와 구글의 래리 페이지도 포함되었습니다.
잡스는 2011년 8월에 애플의 CEO 자리에서 사임했습니다. 그리고 팀 쿡을 새로운 CEO로 임명했습니다.
스토리샷 #42: 레거시
스티브 잡스의 핵심에는 놀라운 강렬함이 있었습니다. 애플은 잡스가 사망하기 직전에 마이크로소프트를 제치고 세계에서 가장 가치 있는 기술 기업으로 등극했습니다. 이 책은 잡스의 원동력에 대한 잡스 자신의 말로 끝을 맺습니다:
"대부분의 창의적인 사람들은 우리보다 앞서 다른 사람들이 해놓은 일을 활용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해 감사를 표하고 싶어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제가 사용하는 언어나 수학을 발명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음식도 직접 만들지 않고 옷도 직접 입지 않습니다. 제가 하는 모든 일은 우리 종의 다른 구성원들과 우리가 서 있는 어깨에 달려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중 많은 사람들이 우리 종에 무언가를 다시 기여하고 흐름에 무언가를 더하고 싶어합니다. 밥 딜런의 노래를 작곡하거나 톰 스토퍼드의 연주를 할 수는 없으니 우리 대부분이 아는 유일한 방법으로 무언가를 표현하려고 노력하는 것이죠. 우리는 우리가 가진 재능을 사용하여 우리의 깊은 감정을 표현하고, 우리 앞에 온 모든 공헌에 감사를 표하고, 그 흐름에 무언가를 더하려고 노력합니다. 그것이 저를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입니다."
- 스티브 잡스
최종 요약, 검토 및 비평
이 책은 20세기 후반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중 한 명에 대한 잘 쓰여진 초상화입니다. 하지만 비평가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이 전기는 1955년 잡스의 출생부터 시작하여 2011년 사망할 때까지를 다루고 있습니다. 잡스의 성공과 실패를 모두 보여주는 균형 잡힌 잡스의 삶을 그려내기 위해 공적인 삶과 사적인 삶이 서로 얽혀 있는 모습을 탐구합니다. 저자인 월터 아이작슨은 잡스의 어린 시절을 파헤쳐 성인이 된 잡스의 동기를 설명합니다. 또한 잡스의 "강렬한 완벽주의, 치열한 경쟁심, 컴퓨터 기술과 사회 변화에 대한 대담한 비전"을 탐구합니다. 이 책은 잡스의 단점을 희생시키면서까지 잡스의 업적을 미화했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습니다.
비판
일부 독자는 저자가 잡스의 단점을 희생시키면서까지 잡스의 업적을 미화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평가
스티브 잡스를 4.5/5점으로 평가합니다. 월터 아이작슨의 책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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